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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그것은약속위반/관심

스티브 잡스 STEVE JOBS - 스탠포드 연설 전문 번역글

by Daniel_Kevin 2022.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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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세계 최고의 대학 중 하나인 여러분들 졸업식에 오게 되어 영광입니다.

그리고 이 졸업식이 제가 겪었던 졸업식 중 가장 가까이 온겁니다.​

오늘 저는 제 인생의 세가지 이야기를 해드리려고 합니다. ​

그게 전부입니다.

별건 아니고, 그저 세가지 이야기입니다.

먼저 인생의 점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리드 칼리지에 입학한지 6개월만에 자퇴했고, 18개월 정도 남아서 도강을 하다가 정말로 그만뒀습니다.

제가 왜 자퇴했을까요?

이야기는 제가 태어나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생모는 젊은 대학원생 미혼모였고, 그래서 저를 입양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대학을 나온 양부모에게 입양되기를 매우 강하게 생각하고 있었고 저는 태어나면 변호사부부에게 입양되기로 모든게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태어났을때 그들은 여자 아이를 입양하기로 마음을 바꿨습니다.

대기자 명단에 있던 양부모들은 한밤중에 이런 전화를 받게 됩니다.​

“예정에 없던 남자아이가 생겼는데 입양하시겠습니까?” 양부모님은 대답했습니다.

그들은 말했다: “물론이죠”

그런데 저의 친모는 후에 양어머니는 대졸도 아니고 양아버지는 고졸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친어머니는 최종 입양동의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했습니다.​

몇달 후 양부모님은 제가 훗날 대학에 가게 될 것이라고 약속한 후에야 친어머니는 입양에 동의했습니다.

이것이 제 인생의 시작이었습니다.​

17년 후 저는 결국 대학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순진하게도 학비가 스탠포드 대학과 맞먹을 정도로 비싼곳을 선택했고 평범한 노동자셨던 부모님께서 모아둔 모든 돈들이 제 학비로 쓰여지고 있었습니다.

6개월 후, 대학생활은 그만한 가치가 없어 보였습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알 수 없었고, 그리고 대학이 그것을 깨닫게 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줄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부모님이 평생 모아온 돈을 다 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잘 될거라고 믿고 자퇴를 결심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매우 두려웠지만, 뒤돌아 보면 그건 제 인생 최고의 결정 중 하나였습니다.

자퇴 이후 재미없는 필수과목들을 듣는 것을 그만둘 수 있었고, 보다 더 흥미있어 보이는 강의를 찾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꼭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제겐 기숙사방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방 바닥에 자기도 했고, 음식을 구하기 위해 5센트짜리 콜라병을 팔기도 했습니다.

매주 일요일밤이면 하레 크리슈나 사원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얻기 위해 마을을 가로질러 7마일씩 걷기도 했습니다. 정말 좋았습니다. ​

순전히 호기심과 직감만을 믿고 우연히 저지른 일들이 훗날 정말 값진 경험이 됐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드리죠.

당시 리드칼리지에서는 아마도 미국에서 최고의 서체강의을 제공했던 것 같았습니다.

학교 곳곳에 붙어있는 포스터와 서랍에 붙어있는 상표들, 그림들은 손으로 아름답게 그린 서체이었습니다.

학교 중퇴로 정규과목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이것(서체)들을 어떻게 하는지를 배우기 위해 서체 수업을 수강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세리프와 산세리프체와, 각기 다른 글자들 조합 사이의 여백의 다양함과, 무엇이 위대한 글자체의 요소인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것은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도저히 잡아낼 수 없는 아름답고, 유서깊고, 예술적으로 미묘한 것이어서 전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서체수업) 이중 어느 하나라도 제 인생에 있어 실용적으로 적용될것 같은 희망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10년 후, 우리가 첫번째 매킨토시 컴퓨터를 디자인하고 있었을때, 그것들이 (고스란히 빛을 발하며) 제게 다가왔습니다.​

우리가 매킨토시에 그것들을 모두 디자인해 넣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서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그 서체 수업을 듣지 않았더라면, 맥은 복수서체나 자간맞춤 기능은 없었을 것입니다.

윈도우가 맥을 따라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더라면) 개인용 컴퓨터에는 이런 기능이 탑재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학교를 자퇴하지 않았더라면, 서체 수업을 듣지 못했을 것이고, 그리고 개인 PC에는 오늘날처럼 멋진 글씨체를 갖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제가 대학에 있을 때에는 이러한 점들이 장래에 하나로 연결될 것이라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나 과거를 돌아보면 모든 것이 명확하게 보입니다.​

달리 말하면, 여러분은 미래를 내다보며 현재의 점들을 (서로 관련있게) 연결시킬 수는 없습니다.​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들만을 연관시켜 볼 수 있을 뿐이죠.​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현재의) 점들이 어떻게든 여러분의 미래와 연결된다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배짱이든, 운명이든, 인생이든, 카르마 등 그 무엇이 됬든

그 점들이 미래로 연결된다고 믿는것은 여러분이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살아갈 자신감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모든 차이를 빚어냅니다.

심지어 그것(믿음)이 당신을 험한길로 이끌지라도

두번째 이야기는 사랑과 상실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운좋게도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일찍 발견했습니다.​

워즌(스티브 워즈니악)와 제가 부모님 차고에서 애플사를 세운 것은 제가 20세일 때입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애플은 10년만에 창고안 2명으로부터 4,000명의 직원들을 거느린 200억달러짜리 회사로 성장하였습니다.​

우리는 최고의 작품, 매킨토시를 1년 일찍 출시했고, 저는 30세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곧 저는 해고당했습니다.​

어떻게 당신이 시작한 회사에서 해고당할 수 있냐구요?​

애플사가 점점 성장함에 따라 저는 제 생각에 저와 함께 회사를 경영할 유능한 경영자를 고용하였습니다.

처음 1년 정도는 그런대로 잘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미래에 대한 우리의 비전은 서로 어긋나기 시작했고, 결국엔 우리 둘 사이도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우리 회사의 경영진들은 존 스컬리의 편을 들었고, 저는 30살에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그것도 아주 공개적으로 쫒겨났습니다.​

성인으로서 제 삶의 촛점들이었던 모든것들이 한순간에 날아가 버렸고, 참담한 심정이었습니다.

저는 몇 개월 동안 무엇을 할지 정말 몰랐습니다.​

저는 선배 세대의 기업가들을 실망시킨 것 같았고, 제게 넘겨진 바톤을 놓쳐버린 것 같았습니다.

데이비드 패커드(hp공동창업자)와 밥 노이스(인텔 공동창업자)를 만나 이렇게까지 일을 심하게 망쳐 놓은것에 대해 사과하고자 했습니다.

저는 공개적인 실패의 본보기였고, (실리콘)밸리에서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맘속에는 뭔가 천천히 다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전 여전히 제가 했던 일을 사랑했습니다.

애플에서 겪었던 일들(변화나 그 흐름들)도 그것을 조금이라도 꺾지 못했습니다.

전 해고당했지만 여전히 일에 대한 사랑은 식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러나 애플로부터 해고당한 것이 제 인생에 있어 일어날만한 가장 최고의 사건인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성공을 한다는 중압감이라는 것은 모든것에 대한 불확실함으로 다시(찾아온) 초심자가 된다는 가벼움으로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내 인생의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하는 시기로 갈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이후 5년 동안, 저는 ‘NeXT’와 ‘Pixar'라는 회사를 세웠고, 지금 아내가 되어준 여성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Pixar는 세계 최초의 3D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애니메이션 제작사가 되었습니다.

세기의 사건으로 평가되는 애플의 NeXT 인수와 저의 애플로 복귀에 있어서, NeXT 시절 개발했던 기술들은 현재 애플의 르네상스(부흥기)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로렌과 저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습니다.

애플에서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이 많을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것들은 입에 쓴 약이었지만 제게는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세번째는 죽음에 관한 것입니다.

17살때 이러한 인용문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매일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산다면, 언젠가는 아주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 글에 감명받은 저는 그 이후로 지난 33년간 매일 아침 거울을 보면서 제 자신에게 묻곤 했습니다.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을 할 것인가?"

며칠 연속 ‘No’라는 답을 얻을 때마다 나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내가 곧 죽게 될거라는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내 인생에 있어 큰 결정을 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는 지금까지 접해왔던 가장 중요한 도구입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외적인 기대사항들, 자부심, 수치스러움과 실패의 두려움은 ‘죽음’ 앞에선(직면하면) 모두 떨어져나가고 오직 진실로 중요한 것들만이 남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죽게 될 거라는 기억은 무엇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여러분은 이미 죽을 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마음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저는 1년 전쯤 암진단을 받았습니다.

아침 7시반에 검사를 받았는데, 췌장에 악성 종양이 보였습니다.

그때까진 췌장이 뭔지도 몰랐죠.

의사들은 거의 치료할 수 없는 종류의 암이라고 했습니다. 또 길어야 고작 3개월에서 6개월 밖에 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주치의는 집으로 돌아가 신변정리를 하라고 했습니다. 죽음을 대비하라는 의사들만의 암호같은 표현이었습니다.

그것은 아이들에게 모든 것들을 (앞으로 10년에 걸쳐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단 몇달 만에 말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가족들이 (당신의 임종을) 쉽게 받아들이도록 매사를 정리해둘 걸 확실하게 해둘것을 의미했습니다. 생전에 미리 잘 정리해 두어 (so that) 결과적으로 가족이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작별인사를 준비하란 의미입니다.

그렇게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저녁 조직검사를 받았는데, 내시경을 목구멍으로 넣어 위장을 지나 장까지 넣고, 바늘을 췌장의 종양에 (찔러)넣어 암세포를 채취하는 조직검사였습니다.

저는 (일종의)마취상태였는데 후에 아내가 말해주길 의사들이 현미경으로 세포를 분석하면서 (놀라운 발견에 소리치며) 울먹거리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수술로 치료가 가능한 매우 드문 형태의 췌장암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술을 받았고 감사하게도 지금은 완치되었습니다.

그때 만큼 제가 죽음에 가까이 가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또한 앞으로 몇 십년 동안은 이번 경험이 죽음에 가장 가까이 갔던 경험이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가지 않길 바랍니다. 이보다 더 나쁜 경험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겪고 살아보니, 죽음이 때론 유용하다는 것을 그러나 단순히 지적인 개념이라고 한때보다 좀 더 확실성을 갖고 여러분들에게 지금 말할 수 있습니다.

누구도 죽길 원하지 않습니다.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 조차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고싶어 하지 않죠. (ㅎㅎㅎ)

천국에 가고싶다는 사람들 조차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고싶어 하지 않죠. (ㅎㅎㅎ)

그리고 여전히 죽음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최종 목적지입니다.(숙명입니다)

그 어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순 없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꼭 그래야만 하지요. 왜냐하면 삶이 만든 최고의 발명이 ‘죽음’일지도 모릅니다.

죽음은 삶의 변화매개체입니다. (죽음이란 삶의 또다른 모습입니다)

죽음은 새로운 새대들에게 길을 터주기 위해 기존세대들을 없애버립니다.

지금 이순간 여러분이 새세대입니다.

그러나 머지 않아서 곧, 여러분들도 점차 구세대가 되어 사라져 갈 것입니다.

너무 극적으로 들렸다면 죄송하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의 삶을 사느라 당신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마십시요.

타인의 생각의 결과물에 불과한 삶, (즉)도그마에 빠지지 마십시오.

소음에 불과한 타인의 의견이 여러분의 내면에 목소리가 들리지 안도록(잠겨버리도록) 두지 마세요.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마음과 직관을 따르는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이미 여러분의 마음과 직관은 여러분이 진정 뭐가 되고자 하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지구백과’라고 하는 놀라운 책이 있었는데, 저희 세대에게는 바이블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멀로 파크에 사는 스튜어트 브랜드란 사람이 쓴 책인데 시적 감각으로 살아있는 책이었습니다.

PC나 전자출판이 존재하기 전인 1960년대 후반이었기 때문에 타자기, 가위,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제작된 책이었습니다.

구글이 등장하기 35년 전 일종의 책으로 된 구글 같은 거였습니다.

그 책은 아주 이상적이었으며, 깔끔한 도구와 멋진 관점으로 넘쳐난 역작이었습니다.

스튜어트와 그의 팀은 여러번의 개정판을 출간하였고, 그 여정이 다할 때쯤에 최종판을 내놓았습니다.

그때가 70년대 중반, 제가 여러분 나이였죠.

최종판 뒤쪽 표지에는 어느 이른 아침 시골길 사진이 있었는데, 여러분이 모험심 있는 사람이었다면 아마도 히치하이킹리다로 할 것만 같은 풍경있습니다.

그 사진 밑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 (배고픈채로 어리석은 채로)

그것이 그들의 마지막 작별인사였습니다.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

제 자신에게도 항상 그러하기를 바랬습니다.

그리고 지금, 새로운 시작을 위해 졸업을 하는 여러분에게 같은 바람을 가집니다.

계속 갈망하라 여전히 우직하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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